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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3.12 이혼을 생각하고 있는 부부에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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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을 생각하고 있는 부부에게...

 

 

 

나의 남편은 조그만 회사에서 기술자로서 일하고 있다. 그의 변함없는 성품과 사나이처럼 남자답게 느껴지는 넓은 마음과 포근함에 반해 나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3년간의 연예와 2년간의 결혼 생활이 계속되는 동안 드디어 나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고 모든 것들이 짜증나고 싫증나기 시작했다. 내가 그를 좋아했던 이유들이 이제는 모두 다 나를 안절부절 못하게 하고 답답하게 만드는 원인들로 돌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낭만적이고 감동적인 생활을 꿈꾸어 왔고 대인 관계나 감정에서도 지극히 예민하고 동심을 꿈꾸는 여자였다. 나는 마치 어린 여자 아이가 캔디를 바라는 것처럼 로맨틱한 순간들이 결혼 생활에서 매순간 계속되기를 바랐었다.

그런데 2년을 살아보니 남편이란 사람은 그와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지금껏 낭만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 볼 수 없었던 무덤덤한 그의 태도로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이벤트는커녕 감동적인 모습조차 아예 꿈 꿀 수 없었다. 이제는 남편에 대한 증오심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사랑에 대한 모든 환상이 무너져 내렸고 결혼생활도 함께 처참하게 헝클어져 버렸다.

 

 

어느 날,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미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오랜 방황 끝에 내린 내 결심을 알리기 위해 그에게 작심한 듯이 이혼을 요구했다.

왜 그래, 당신?” 그는 엄청나게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왜냐고? 결혼 생활이 싫증이 났어. 아니 진절머리가 나. 내 마음이 왜 이렇게까지 변했는데도 몰라서 물어? 그 이유를 꼭 하나하나씩 설명해 줘야 알아듣는 거야? 그렇게 여자 마음을 몰라?”

나는 큰소리로 그 동안 쌓인 감정을 퍼부어댔다. 남편은 이내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멍하니 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밤새 담배만 피워대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뭐라고 제대로 변명조차 하지 않는 그의 초라한 뒷모습에 내 실망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이혼이란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는데도 화도 내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바보 같은 남자와 그동안 살아왔다니.

밍숭맹숭하고 밋밋한 결혼 생활을 하면서 속아 산 것이 분하고 속상해서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고 이제 더 이상 그에게서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기에 그저 결혼 생활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싶었다.

마침내 안절부절 못하며 서성이던 그는 나에게 간절한 눈빛으로 물었다.

당신 마음을 바꾸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나에게 당신을 웃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 딱 한번만 더 기회를 주면 안 될까?”

 

 

그때 누군가가 사람의 성격은 평생 바꾸기 어렵다고 말했던 것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이제는 그에 대해 마지막 남아 있던 믿음과 정나미마저 모두 털어내고 싶었다.

한참 그의 눈을 쏘아보다가 천천히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그렇다면 질문 하나만 해볼게. 내 질문에 진심을 담아 대답하고 만약 나를 감동시킬 수만 있다면 어쩌면 내 마음이 바뀔지도 몰라. 이를테면, 산 절벽 중턱의 한 가운데 피어있는 꽃 한 송이를 내가 원한다면 어떻게 할 건데? 그 꽃 한 송이를 따기 위해선 당신 목숨을 내놓아야 할지도 몰라.

그런데도 과연 당신이 나를 위해 그 꽃을 꺾어서 가져다 줄 용기라도 있겠어? 물론 어림 반 푼어치도 없겠지.”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길, “내일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해줄게.”

열정도 매력도 없이 풀이 푹 죽은 듯한 목소리에 내가 가졌던 한 가닥 희망의 조각마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었을 때 그는 집에 없었다. 다만 그가 손으로 휘갈겨 쓴 쪽지 한 장이 문가 앞 식탁 위 물잔 아래에 놓여 있었다.

나는 당신을 위해 그 절벽에 핀 꽃을 따다 줄 수는 없어, 그런데 잠시만. 내가 그 이유를 더 자세히 설명할 시간을 줄 수 있겠어?”

첫 문장을 읽자마자 저 따위 열정도 용기도 없는 남자가 그럼 그렇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라는 생각이 치밀어 오르면서 이미 결혼 생활은 파경을 향해 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래도 계속해서 읽기로 했다.

당신이 컴퓨터를 쓰면서 불필요한 악성 파일에 걸려 속도가 느려지고 속상해 할 때 나는 뒤에서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어. 그 대신 나중에 모든 프로그램들을 복구시켜 놓고 악성 파일들을 다 지워놓았지. 당신이 항상 열쇠를 집에다 두고 나갔을 때 당신이 문을 못 열어 당황할까 봐 나는 항상 서둘러 집으로 귀가해서 당신을 맞이했었지. 당신이 여행을 좋아하지만 그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을까봐 나는 당신에게 길을 안내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먼저 찾아보면서 미리 준비해 두었어.

날이 추워 집안에만 머물러 있을 때 어린아이처럼 지루해할 때가 올까봐 재미있는 이야기들과 농담들을 말해주려고 서툴지만 조금씩 지금도 연습하고 있었어. 컴퓨터 작업으로 눈이 피로해지고 흐릿해지면 내가 먼 훗날 당신 대신 당신 손톱, 발톱도 깎아주고 성가시게 만드는 하얀 머리카락도 뽑아주려고 했었고.

지금 젊었을 때 더 열심히 일해서 조금 여유가 생긴다면 당신과 함께 팔짱을 끼고 해변가를 산책하면서 지는 태양도 보고 반짝이는 모래를 보고도 싶었지. 화사하게 핀 꽃들의 색깔이 마치 당신의 젊었을 때의 모습을 닮았다고 말하면서 말이야.

여보이 세상에 나보다 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난 주저 없이 기꺼이 절벽에 핀 그 꽃을 꺾으러 가겠고 내가 꽃을 따다가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을 거요.’

 

 

그 순간 눈물이 편지 위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손으로 쓴 글씨에 눈물이 닿자 잉크가 번져나갔다. 그 흐린 눈빛으로 나는 계속 편지를 읽어내려 갔다.

이제 내 대답을 들었다면, 그리고 조금이라도 당신 마음이 누그러졌다면 지금 현관문을 열어주시구려. 새벽부터 나가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빵과 우유를 사가지고 난 그 앞에서 꼼짝하지 않고 지금까지 서있을 거니까. 오늘 하루 종일 말이오.”

나는 당장 달려가서 그 문을 열었다. 그의 상기된 얼굴을 보면서 힘껏 그를 끌어안았고 차가워진 손을 잡고 집안으로 그를 들였다. 이제 나는 확실히 알았다. 그 사람만큼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절벽 위에 핀 꽃은 그냥 마음속에만 남겨두기로 결심했다.

 

 

그렇다. 그것이 인생이고 사랑이다. 누군가가 사랑을 하게 되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흥분되고 설레는 감정은 사라져 버리고 무감각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편안하고 익숙함 사이에 놓여있는 진정한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는 법이다.

또한 사랑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도 보여 질 수도 있다. 때론 사랑은 작고 사소하며 하찮게 보일 수도 있고 지루하고 따분한 모습일 수도 있다. 화려한 꽃처럼 로맨틱한 순간들은 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만 눈부시게 반짝일 뿐 익숙해지면 곧 수면 아래로 깊이 가라앉고 만다. 그 대신 사랑의 밑바닥에는 진실과 이해 그리고 신뢰라는 견고한 기둥들이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위대한 사랑의 불씨를 우리가 잠시라도 볼 수만 있다면 모든 권태기는 사라질 것이며 이혼이란 극단적인 상황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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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중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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