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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마지막 식사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해서 가정을 이뤄 산지도 벌써 20년이 훌쩍 지났고 이제 며칠 후면 결혼기념일이다. 요즘 식사 준비를 하다가도 콧노래를 자주 부르는 모습을 보면 아내는 내심 어떤 근사한 선물을 받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눈치였다.

어느 날 저녁 식탁에서 아내는 말했다.

사랑하는 여보. 당신도 알다시피 얼마 있으면 우리가 결혼한 지도 20년이 되어가네요. 아이들도 많이 컸고. 참 세월 빠르죠? 그런데 한 가지 부탁할 게 있어요. 꼭 들어줄 거죠?”

아내의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줄 마음의 준비가 되었기 때문에 잠시 식사를 멈추고 귀 기울여 들었다. 그런데 그녀는 전혀 생각지 않은 의외의 부탁을 했다.

이번 결혼기념일 주말에는 나 말고 당신이 특별한 여자를 만나 저녁 식사를 하고 영화도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으면 해요. 누군지 궁금하죠? 바로 당신을 너무나도 많이 사랑해주셨던 당신 어머님 말이에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두 명의 자식들을 키우고 뒷바라지 하면서 고생만 하시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19년 동안을 홀로 살아 오셨다. 장남인 나는 자주 찾아뵙겠다고 말씀만 드렸지 세 명의 자식들이 커가고 회사 일도 점점 많아지다 보니까 어쩌다 한 번씩 들릴 뿐이었다. 아내는 기특하게도 자신보다 나의 어머니를 염려하고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을 때 아내는 계속해서 말했다.

요즘 몸도 많이 불편해지셨는데 모처럼 둘이 오붓하게 드라이브도 하고 모자지간에 못 다한 이야기도 하면서 데이트를 즐겨보세요. 어머니는 옛날 생각이 많이 나실 거예요.”

 

그날 밤, 나는 당장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려 약속 날짜를 잡기로 했다. 전화를 받으신 어머니는 내 목소리를 듣고선 적잖게 놀라셨다. 늦은 시간에 갑자기 전화를 하면 으레 어른들은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있는 게 아닐까 걱정하셨기 때문이었다.

이 밤중에 웬 전화니? 아들,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니?” 어머니가 물으셨다.

아니요, 어머니. 어머니 목소리가 그냥 듣고 싶어서요. 잘 계시죠? 그동안 자주 찾아뵙지 못했는데 이번 주말에 어머니랑 저녁 식사도 하고 영화도 같이 보려고요. 어렸을 때처럼 어머니와 나 둘만 시간을 내서 말이에요. 어떠세요?” 나는 말했다.

어머니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천천히 말씀하셨다. “그래? 그러려무나. 이번 주말이라. 이거, 아들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기대가 되고 설레는데.”

 

토요일 저녁, 나는 차를 몰고 어머니를 모시러 갔다. 모처럼 둘 만의 시간이라 은근히 긴장도 되었다. 어머니 집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 역시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계신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들어가기도 전에 문 앞 현관에서 멋진 정장을 입은 모습을 바라보고 서 계셨는데 머리는 오늘 아침 미용실에서 예쁘게 단장한 듯 했다.

어머니, 저 왔어요.” 내가 대답하자 어머니는 활짝 웃어 보이시며 반갑게 맞아 주셨다.

오늘 내가 아들하고 단 둘이 데이트를 하러 간다고 전화로 친구들에게 자랑했더니 다들 부러워하더구나. 살다 보니까 이렇게 자식을 키운 보람이 있네. 정말 고마워.” 전혀 뜻밖의 약속에 감격하셨는지 어머니의 눈가에 약간 눈물이 맺혔다.

차에 올라타신 순간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기뻐하셨다. 진작 이런 시간을 마련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아주 멋진 호텔급 레스토랑은 아니지만 경치가 좋고 아늑한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밖에는 이따금 눈발이 날리며 초겨울의 운치를 더해주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주문할 메뉴를 읽어 드렸다. 나이가 드신 어머니는 노안 때문에 작은 글씨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중간쯤 메뉴를 읽어나갈 때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시는 어머니를 느낄 수 있었다.

네가 어렸을 때는 식당에 가면 이 애미가 네가 무엇을 먹을지 읽어주면서 시켜주곤 했는데. 이제는 네가 나를 위해 그 일을 대신 해주는구나.” 어머니는 대견하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그럼요. 이제는 제가 어머니를 편안히 해드리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할 차례죠.”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식사시간 동안 내내 최근에 일어난 일부터 시작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우리 둘은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동안 마음에 담아두셨던 일들이 많이 생각나셨는지 입가에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서 영화를 보러가는 시간까지 깜빡 놓치고 말았다.

늦은 밤, 어머니의 집 앞에 다다랐을 때 말씀하셨다.

오늘 너무 고맙다. 자주 이런 시간을 마련하도록 하자구나. 또 초대해 주렴. 얼마든지 나갈 테니까.”

그럼요. 어머니. 또 불러 들릴게요. 오늘 많이 즐거우셨어요?” 나는 물었다.

아주 즐거웠지. 마치 예전에 너를 키웠을 때의 그 기분으로 돌아간 듯 하구나.” 어머니는 활짝 웃으시면서 대답하셨다.

 

함께 오붓한 시간을 가진지 얼마 안돼서 연세가 많으셨던 어머니는 돌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닥친 일이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그녀를 위해 어떤 조치도 취할 수가 없었다.

슬픔 속에 장례식을 치른 지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어머니와 내가 함께 식사를 했던 레스토랑으로부터 편지 한통을 받았다.

그 안을 열어 펼쳐보니 청구 영수증과 함께 어머니가 쓴 편지가 들어 있었다.

아들, 다음 번 너희 가족과의 만남을 위해 내가 미리 식사 요금을 지불해 놓았단다. 요즘 몸이 너무 안 좋아 너희 식구들과 함께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너희 가족 모두가 푸짐하게 요리를 시켜 먹을 순 있을 거야. 오늘 밤, 너와 나 단 둘만 가진 저녁 만남이, 이 애미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 같구나. 행복한 시간을 마련해 줘서 고맙다. 내가 화장실 간 사이 레스토랑을 나서기 전에 메모를 작성해서 너의 집으로 붙여달라고 웨이터에게 부탁했단다. 언제나 사랑한다. 아들.’

그 순간 내 눈에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돌아가시기 전 레스토랑에서 마지막으로 사랑해요. 어머니. 고마워요. 어머니라는 말을 해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서 가족보다 소중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 ‘나중에, 나중에시간이 되면 가족들을 챙기고 돌봐야지라고 생각한다면 어쩌면 너무 늦고 영영 기회를 잃을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생각이 날 때 이번 주말 부모님을 찾아뵙고 아내와 남편, 자녀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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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중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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